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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02.12.12 18:15

백치 애인 - 신달자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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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에겐 백치 애인이 있다.
그 바보의 됨됨이가 얼마나 나를 슬프게 하는지 모른다.
내가 얼마나 저를 사랑하는지를, 그리워하는지를 그는 모른다.
별 볼일 없이 우연히, 정말이지 우연히 저를 만나게 될까
봐서 길거리의 한 모퉁이를 지켜 서 있는지를 그는 모른다.
제 단골 다방에서 다방 문이 열릴 때마다 불길 같은 애수의
눈을 쏟고 있는지를 그는 모른다.
밤이면 네게 줄 편지를 쓰고 또 쓰면서 결코 부치지 못하는
이 어리석음을 그는 모른다.
그는 아무것도 모른다.
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그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장님이며,
내 목소리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이며,
내게 한마디 말도 해오지 않으니 그는 벙어리이다.
바보 애인아!
너는 나를 떠나 그 어디서나 총명하고 과감하면서,
내게 와서 너는 백치가 되고 바보가 되는가.
그러나 나는 백치인 너를 사랑하며 바보인 너를 좋아한다.
우리가 불로 만나 타오를 수 없고 물로 만나 합쳐 흐를 수
없을 때, 너는 차라리 백치임이 다행이었을 것이다.
너는 그것을 알 것이다.
바보 애인아,
너는 그 허허로운 결과를 알고 먼저 네 마음을 돌처럼 굳혔는가.
그 돌같은 침묵속으로 네 감정을 가두어 두면서
스스로 너는 백치가 되어서 사랑을 영원하게 하는가.
바보 애인아,
세상은 날로 적막하여 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큰
과업처럼 야단스럽고 또한 그처럼 못하는 자는 절로
바보가 되기도 하는 세상이다.

그래 바보가 되자.
바보인 너를 내가 사랑하고 백치인 네 영혼에 나를
묻으리라.
바보 애인아,
거듭 부르는 나의 백치 애인아,
잠에 빠지고 그 마지막 순간에 너를 부르며 잠에서 깬
그 첫 여명의 밝음을 비벼 집고 너의 환상을 쫓는 것을
너는 모른다.
너는 너무 모른다.
정말이지 너는 바보, 백치인가.
그대 백치이다. 우리는 바보가 되자.
이 세상에 아주 제일 가는 바보가 되어서 모르는
척하며 살자.
기억 속의 사람은 되지 말며 잊혀진 사람도 되지 말며
이렇게 모르는 척 살아가자.
우리가 언제 악수를 나누었으며 우리가 언제 마주 앉아
차를 마셨던가.
길을 걷다가 어깨를 부딪치고 지나가는 아무 상관 없는
행인처럼 그렇게 모르는 척 살아가는 것이다.
바보 애인아,
아무 상관없는 그런 관계에선 우리에게 결코 이별은 오지
않을 것이다.
너는 나의 애인이다. 백치 애인이다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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